숨진 아버지 성추행 시도했다던 여성, 정당방위→징역 5년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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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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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90살이 넘은 고령의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김 모 씨.

김 씨는 법정에서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해 몸싸움을 벌이다가 숨졌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1심 법원은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최근 항소심 법원은 정반대로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 아버지와 술 마시다 다툰 여성...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

드러난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2019년 5월 1일 낮, 김 씨는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찾아가 거실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술을 마시다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평생 일만 하면서 고생해 몸이 안 좋다"는 등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김 씨 아버지는 집 안에서 왼쪽 갈비뼈와 목뼈 일부가 부려지고 이마와 어깨 등이 찢어져 피를 흘려 숨진 채 저녁에 집에 돌아온 다른 가족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아버지에게 전신거울 나무 받침대와 사기그릇 같은 물건을 던지고 휘두르는 등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고 보고 김 씨를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 계속 뒤바뀌는 진술..."아버지가 성추행하려고 해 저항, 정당방위"

김 씨는 최초 경찰 조사에서는 아버지와 단둘이 술을 마시다가 말다툼을 했고 아버지가 던진 물건에 눈을 맞은 뒤 집을 나왔다고 어느 정도 당시 상황을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김 씨의 진술, 이후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는 "술을 마신 뒤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바뀌더니 법정에 가서는 돌연 "아버지가 성추행하려고 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정당방위"였다고 바뀌었습니다.

술을 마시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웃옷을 벗은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지고 있었고 저항하려고 물건을 잡히는 대로 던졌다는 겁니다.

1심 판결문 중 김 씨의 법정 진술 내용

뒤바뀐 김 씨의 진술 말고도 숨진 아버지의 얼굴까지 이불이 덮여 있던 점, 사건 직후 김 씨가 아버지의 의식을 확인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점 등 재판부조차 의심스럽다고 본 정황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 배제 못 해"...1심에서 무죄 선고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을 함부로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먼저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고, 김 씨 역시 심경의 변화로 기존 진술을 번복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또 김 씨가 아버지의 명예와 어머니가 받을 충격, 자신의 수치심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김 씨가 법정에서 밝힌 당시 상황이 상세하며 객관적으로 확인된 정황들과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신빙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숨진 아버지를 부검한 결과 '도네페질'이라는 치매 치료제 성분이 검출됐는데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판단능력이 흐려져 실제로 성추행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고려됐습니다.

결국, 김 씨 주장대로 아버지의 성추행 시도가 사실이라면 김 씨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즉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항소심에서는 유죄..."기억 만들어졌거나 왜곡됐을 가능성"

1심 선고 뒤에도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던 이 사건, 항소심에서는 정반대로 김 씨에게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진술이 너무 자주 바뀌어 김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씨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이유였습니다.

김 씨는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거실에서 잠이 들었고, 아버지가 웃옷을 벗은 채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지고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언제 웃옷을 벗었는지 등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또 이런 김 씨의 진술 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 김 씨의 기억이 만들어졌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씨가 수사단계에서 정당방위 주장을 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도 구속까지 된 상황에서 오로지 이미 숨진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처벌을 감수하려고 했다는 김 씨의 설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김 씨 아버지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성추행을 하려는 시도나 낌새를 보인 적이 없고 치매 증상 역시 가벼웠던 점도 고려됐습니다.

김 씨의 항소심 판결문

■ 항소심에서 징역 5년 선고..."아버지 성추행범으로 몰아간 파렴치한 범행"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점들을 이유로 존속상해치사죄를 인정해 김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93살의 아버지를 각목 등으로 때려 상해를 입히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패륜적인 사건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방치했고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것인데 왜 내 책임인지 모르겠다"고 법정에서 진술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특히 김 씨가 혐의를 벗기 위해 아버지를 성추행범으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범행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보이고 김 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다는 점이 참작됐습니다.

1심과 2심을 거치며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질 전망입니다.

성용희 (hee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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