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했다 전재산 날렸다" 137명 당한 '분양형 호텔'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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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13. 오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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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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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지난해 3월 5일 찍은 전남 여수시 돌산대교와 여수 앞바다. 연합뉴스
전남 여수 해안가에 객실 210개를 갖춘 한 호텔. 2년 전 문을 연 이 호텔 밖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속에서는 치열한 소송전으로 얼룩져 있다. 아파트처럼 객실을 분양한 뒤 임대료를 지급하는 분양형 호텔을 내걸었지만, 투자자 137명이 임대료를 받지 못하면서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호텔의 위탁운영사는 2018년 투자자와 계약하면서 5년간 객실 분양가의 7%를 임대료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분양 가격은 객실당 약 2억2500만원으로 소액 투자자가 148개의 객실을 분양받았고, 나머지 객실 62개는 대한토지신탁이 소유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위탁운영사의 약속을 믿고 투자했지만 5개월치 임대료만 받고 이후엔 수익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투자자, "돈 빌려 분양받았는데 임대료 안 줘"
소액투자자들은 1년 넘게 임대료는 못받고, 금융권에서 빌린 분양대금의 이자만 수십만원씩 내고 있다. 차모(45)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고정 소득이 필요할 것 같아 분양형 호텔에 투자했다. 차씨는 2018년 4억5000여만원을 내고 객실 2개를 분양받았는데, 3억원가량을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았다. 호텔 운영사 측이 "매월 지급받는 임대료로 이자를 내고도 60만원 이상 남는다"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차씨는 ”이자만 월 150만원가량 매달 나간다”며 “첫째 아들은 등록금과 생활비가 필요해 휴학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둘째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밤낮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자만 감당하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소액 투자자들은 법원에서 호텔의 소유권을 모두 인정받았다. 위탁사가 투자자들에게 건물을 인도해야 한다는 게 지난 9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내린 판결이다. 재판부는 "위탁 운영사 측이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았고, 투자자들이 보낸 계약이행 내용증명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았다“며 ”투자자들이 소유 또는 공유하고 있는 각 객실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호텔 측, 운영자 이름 바꾸며 '버티기'
하지만 호텔 위탁사는 법원 판결 이후에도 호텔을 점거하고 계속 운영 중이다. 소액투자자와 소송을 진행하며 이름이 비슷한 회사에게 운영권을 여러 차례 승계했다. 소액 투자자들은 운영권 주체를 바꿔 소송의 효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꼼수로 본다. 투자자 측은 ”위탁사가 시간을 끌고 호텔 객실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대표이사도 계속해서 바꿨다“며 ”불법 ‘알박기’다“고 주장했다.

호텔 위탁사와 맞서기 위해 소액투자자 중 일부와 대한투자신탁은 173개 객실에 대한 권한을 관리단에 위임했다. 이 관리단에서 투자자 대표로 활동하던 서모(51)씨는 호텔측 과의 계속되는 분쟁에 우울증 치료까지 받고 있다. 서씨 이전에 관리단에서 호텔을 상대로 대표 소송을 진행하던 투자자는 최근 폐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서씨는 ”분양형 호텔에 완전히 사기를 당했다.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전혀 없는 잘못된 제도”라며 “노후대책으로 빚내서 투자했다가 아파트에 압류가 걸려 월세방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탁사 측이 호텔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혐의로 고소해 경찰 수사도 받고 있다.

양측, "호텔 점거·운영비 점유" 진실 공방
최근엔 투자자 측이 경비용역을 고용해 호텔을 점거하고 돈까지 가져갔다는 주장이 제기돼 호텔측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또 호텔 운영사 측은 관리단이 고용한 경비용역이 호텔을 점거한 과정에서 여직원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투자자들은 "관리단에서 법원 판결에 따라 호텔 객실을 돌려받기 위해 경비용역을 고용한 건 맞지만 폭행이나 성희롱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운영사 측은 "2019년엔 경영상 어려움이,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해 임대료 지급이 안 됐다"며 "갈등을 겪었지만 법원 결정에 따라 정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투자자 대표는 "객실 공과금 내역을 보면 운영 어려움 있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이라고 재반박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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