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고 싶어요" 그 말에 무차별 폭행…法 살인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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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1.09. 오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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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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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지난 2013년 서현이 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한 뒤 재판에 출두한 계모가 재판이 끝난 후 호송버스에 오르는 순간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 카페 회원이 뿌린 물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소풍 가고 싶어요.”

지난 2013년 10월 24일 초등학교 소풍날 8살 서현이가 아침부터 시작된 의붓어머니의 폭행을 견딘 후 어렵사리 꺼낸 말이다. 이날 의붓어머니 A씨(당시 40세)는 서현이가 전날 식탁에 올려둔 2300원을 훔쳤다고 생각하고 서현이의 머리와 몸통을 손과 발로 무자비하게 때렸다. 교사에게는 “아이가 아파 소풍에 갈 수 없다”고 전화했다.

서현이는 폭행을 당한 후에도 A씨에게 먼저 다가가 “앞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화가 덜 풀린 A씨는 주먹으로 서현이의 복부와 허리 쪽을 수차례 가격했다. 이후 A씨는 서현이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TV를 켰다. 친부에게는 전화를 걸어 “딸이 소풍에 갔다”고 했다. 한참 뒤 서현이가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로 방에서 나와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소풍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자, A씨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A씨는 다시 서현이를 폭행했다. 남편이 아이가 멍든 것을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워진 A씨는 서현이에게 반신욕을 하라고 했다. 욕실에 스스로 들어간 서현이는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A씨는 그제야 욕실에서 심장박동이 없는 서현이를 발견했다. A씨가 119에 신고한 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서현이는 사망했다. 폭행 당시 서현이의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면서 폐를 찔러 과다 출혈이 발생한 게 사망 원인이었다.

울산지방법원의 1심 판결문에는 그날의 폭행 상황이 이렇듯 자세히 담겼다. 대부분 A씨의 진술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A씨는 서현이의 친부와 지난 2009년부터 함께 살면서 서현이를 학대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신고가 없었던 건 아니다. 경북 포항에 살던 지난 2011년 유치원에서 색연필을 훔쳤다며 A씨가 회초리로 때리는 등 서현이의 몸에 자주 심한 멍이 들자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신고했다.

하지만 신고는 학대가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조사기관에 서현이가 A씨에 대해 “좋다”고 얘기하거나, 이마 등에 난 상처에 대해서 “놀다가 다쳤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서현이의 몸 상처 또한 신체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이 났다.

학대는 1년 뒤 또 발생했다. A씨는 서현이의 친부와 다퉜다는 이유로 화가 났다. 샤워기로 서현이 손과 다리에 뜨거운 물을 뿌려 2도 화상을 입혔다. 하지만 이때도 서현이는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서현이 사망 후 사건이 알려지자 “계모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진정서 1만여장이 넘게 쏟아졌다. 검찰은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 A씨 측은 “폭행한 건 맞지만 죽일 의도는 없었다”며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4년 4월 1심을 맡은 울산지법은 A씨에게 살인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5년 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A씨의) 범행 후 (아이를 살리려고 했던) 행동이 고의로 아이를 살해하기 위해 폭행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국민은 크게 반발했고, 6개월 뒤 열린 항소심에선 A씨의 ‘살인 고의성’이 인정됐다. 맨손, 맨발로 이뤄진 아동학대 사건에서 살인죄를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이었다. 부산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갈비뼈가 16개 부러진 아이가 스스로 욕조에 들어가 반신욕을 했다는 (A씨의) 주장을 믿을 수 없고, 119 신고 후 욕실에 있던 아이의 혈흔을 지우고 구급대원에게 과민 반응을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핏기가 없는 아이의 모습을 봤는데도 폭행한 건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한 범죄”라고 명시했다. 이후 A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은 확정됐다.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갖다 놓은 물품들이 놓여있다. 뉴스1
서현이의 사망 7년 뒤인 지난해 10월 '판박이' 사건이 발생했다. 양부모의 학대와 방조로 지난해 10월 숨진 ‘정인이 사망 사건’이다.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해 말 정인이 양모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양부는 아동학대 방임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살인죄를 적용했다면 사형까지 가능하지만 아동학대치사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진다.

전문가들은 '서현이 사건'과 같은 전례를 들며 충분히 정인이 양모에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4일 성명서 등에서 “(살인죄를 적용해) 아동학대가 얼마나 중한 범죄인지 알려야 한다”며 “정인이의 피해나 제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를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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