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추락한 父, 70분 넘게 방치하고 119도 끊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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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3.30. 오전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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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용접공 60대 아버지 잃은 아들 호소
업주, 거짓말 일관…“2021년 일어난 일 안 믿겨”
A씨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오른쪽은 A씨 아버지의 묘소. A씨 제공

“총 70~80분을 방치했대요. 119 신고 전화는 도중에 끊었고요.”

최근 경북 칠곡 공장에서 발생한 사다리 추락 사고로 60대 아버지를 잃은 A씨는 27일 담당 경찰의 말을 전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가 무려 1시간10분 이상 방치되고, 사고 직후 접수됐던 119 신고까지 취소됐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아버지가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보다 무책임했던 관계자들의 태도에 더욱 괴롭다고 했다.

A씨는 특히 공장 측 일을 받아 아버지를 고용했던 업자 B씨를 향해 크게 분노했다. B씨가 아버지를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사건 축소에 급급해 거짓말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B씨가 아버지를 오랜 시간 방치한 후 약 25㎞나 떨어진 구미 지역의 병원으로 데려간 것도 A씨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취소된 신고 전화…방치는 1시간 넘어

A씨의 아버지는 지난 1일 낮 12시쯤 해당 공장에서 용접 작업 전 수평선 확인을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추락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고 발생 열흘째인 10일 중환자실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A씨는 “CCTV 확인 결과 현장에 직원 7~8명이 있었지만 B씨는 물론 누구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았다”며 “경찰에 따르면 방치 시간만 70~80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 말로는 119 확인 결과 사고 몇 분 후 공장 관계자가 ‘사람이 다쳐서 구급차가 와야 한다’며 신고했으나 중간에 누군가 괜찮다고 했는지 ‘괜찮다고 하는데 일단 안 오셔도 됩니다’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면서 “신고 접수 후 취소한 게 아니라 전화 도중 끊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쓰러져 있는 A씨 아버지. A씨 제공

1시간 넘게 방치된 A씨의 아버지는 B씨에 의해 구미 지역에 있는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B씨가 직접 자신의 차로 옮겼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2시간여가 지난 오후 2시8분. A씨는 이로부터 20분 뒤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알게 됐다.

곧장 병원으로 출발한 A씨는 오후 3시쯤 응급실 앞에서 B씨를 만났다. A씨는 “B씨는 아버지가 1m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허허 웃으면서 이야기하길래 별일 없는 줄 알았다”며 “응급실에 들어가 아버지의 상태를 본 후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 주치의와 면담은 A씨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의사는 “(아버지의 상태가) 1m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했다. A씨는 “아버지가 머리를 살짝 다치거나 금 간 게 아니고 깨져 있었다”며 “출혈도 3곳에서 났다”고 말했다.

거짓말만 한 B씨…사다리 높이도 속여

A씨가 현장에서 확인한 CCTV에는 B씨의 말과 전혀 다른 상황이 담겨 있었다. 사다리 높이는 1m가 아닌 3m였고, 아버지가 걸어서 차에 탔다는 B씨 주장과 달리 업혀 나가는 장면도 찍혀 있었다.

B씨는 노동청 조사에서 “추락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A씨 아버지가 말을 잘하는 것 같았다. 별문제가 없어 보여 바로 신고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지난 6일 A씨와 통화에서는 “그런 경과를 처음 봤고 너무 당황해 바로 조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쓰러진 A씨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살이 벌벌 떨리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담배밖에 더 피우나”라고 했다.

담배 피우는 B씨. 공장 CCTV 중 일부. A씨 제공

A씨 아버지가 처음에는 머리와 허리 통증을 호소하다가 중간중간 의식을 잃었다는 목격담이 나오기도 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A씨 아버지를 챙긴 근로자 C씨의 증언이다. 사건 관계자들의 기억이 조금씩 엇갈리는 상황이라 B씨의 정확한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했지만, B씨는 “운전 중이니 나중에 답하겠다”는 첫 통화를 끝으로 답변이 없었다.

A씨는 안전 담당 관리자가 없고, 보호 장비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공장 측 역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아버지가 사용한 사다리 또한 애초 고장 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A씨는 “공장주에게 안전관리자 유무를 물어보니 ‘신규 업체라 이제 차려서’라는 애매한 답변만 했다”며 “다른 부분도 ‘사다리는 우리가 준 거 아니고 그 사람이 가져온 것’ 등 책임 회피만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현장에서 찍은 사다리 사진. A씨는 "오른쪽 부분이 고정 안 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A씨 제공

이 사건을 조사 중인 담당 근로감독관은 국민일보에 “계약 관계에 따라 공장주의 책임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며 “원청의 책임을 물으려면 도급 관계여야 하는데, 그냥 발주자라면 안전 보건에 관한 책임은 없다”고 설명했다. B씨에 대해서는 “사다리 작업 시 발판, 안전대, 보호장비 등을 제공하지 않은 부분은 법 위반”이라고 했다.

“아직도 이런 일이, 제발 다시는

40여년 경력 용접 베테랑이었던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게 된 그는 큰 충격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어머니와 누나는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다. 그는 얼마 전 조카의 카톡을 받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하늘나라 간 할아버지 불쌍해요. 전화 올 것 같은데 안 와요”라는 내용이었다.

A씨가 조카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A씨 제공

A씨는 B씨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예비적 유기치사)로, B씨와 공장주를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고소했다. 고소 이후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통해 사건을 알리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더는 아버지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벌을 받게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지금이 1980년대도 아니고 2021년이잖아요.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이 다칠 수는 있는데 그 이후 절차를 아직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을 수 없어요. 다른 고용주도 안전관리나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써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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